2024년 08월 18일

<달콤한 노래> 리뷰

루이즈는 누구일까? 그녀는 칭송받기도 하고, 비난받기도 한다. 그녀는 가난하고, 미성숙하며, 깔끔하지만 심하게 상처받은 인물이다. 우리는 루이즈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본다. 그녀가 동시에 욕망하고 경멸하는 그녀의 고용주들, 그녀가 한편으로는 애지중지하면서도 작은 잔혹함을 가하는 아이들, 이웃, 집주인, 남자친구. 그들 모두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녀의 외로움, 가난, 그리고 붕괴를 들여다보지 못한다.

비극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

우리 안에 숨겨진 광기. 누구나 조금씩은 있다고 하는 어두운 면을 루이즈는 보다 명확하게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일상에서는 드러낼 일이 없었다. 사실 그렇게 내면이 무너지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사람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 가기 전에 삶의 여러 군데서 제동이 들어온다. 보통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통해 기운을 되찾고, 불행히도 그 단계를 넘어서 일탈을 하게 되더라도 수습 가능한 사건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일견 특별한 일이 없어 보이는 평화롭고 권태로운 시간 속에서 루이즈는 아주 천천히 영혼이 무너져, 끝내는 몰락하고 말았다.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 미립자 같은 변화들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상상할 수 없는 결과가 일어나고 말았다. 늘 일어나는 일들, 흔히 일어날 법한 작은 일과들의 연속선상에서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최악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미리암과 폴이 보여준 모습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그들이 설령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죽어야 할 그런 잘못들은 아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준다고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세상 모든 문제를 같이 짊어질수는 없다. 출근길 버스를 몰던 운전기사가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교통사고가 나고 누군가 다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출근길의 교통사고를 안타까워 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사고에 잘잘못이 있다면 따져서 후에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루이즈처럼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아주 은밀한 붕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안타까워하고 어디에서 잘잘못을 따져야 한단 말인가.

결국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같이 살지만 그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이는 슬프게도 가족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기에 덜 그래 보일 뿐. 스테파니도, 자크도 루이즈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과 다름없이 친밀했던 미리암과 폴도 그녀를 이해 못했다.

안타깝지만 이 모호하고 흐리멍덩한, 알 수 없는 영역을 담담하게 적시해야 한다. 우리는 삶과 운명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 결국 알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 닥친다는 것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주변의 모든 비극을 막고자 하는 우리의 시도는 계속되겠지만, 이는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며, 기약 없는 여행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매 순간 맞이하는 장난 같은 운명의 결과에 보다 분연히 맞설 수 있다. 삶의 비극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 마치 전사가 죽으면 발할라로 간다고 믿었던 중세 바이킹들처럼 말이다.